IT/내가 경험한 우리나라 컴퓨터 역사

8Bit / BASIC

hexcode 2021. 3. 18. 21:09

8Bit BASIC에서 메인프레임급 Unix OS까지 시스템엔지니어로 오래 살아왔던 저의 경험을 쭉 나열해 볼까 합니다.  이쪽 계통 분야 종사자들은 추억을 살리며 한번씩 나열해 본다고 하여 저도 OS 덕후인지라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OS는 모두다 다뤄본것 같아 블로그를 통해 동참해 봅니다.  오랜 IT 경험을 하다보니 고인물이 되어서 8Bit 시절부터 제가 겪어왔던 시행착오 및 이 분야에 계속 살아남았던 경험들을 써볼까 합니다. 저도 IT업계 은퇴가 얼마 안남았네요

1983년 저는 경기도 부곡(의왕) 에 살았습니다. 의왕역 바로 앞에 큰 제재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사업으로 공장에 딸린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합판사업 및 목재사업은 프라스틱이 나오기전에 주력사업이었습니다. TV도 모두 목재자재로 패키징 되었고, 건축자재가 모두 목재였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것은 동네 약국에 약사님이 처음 들여온 타자기같은 것이였고 저는 타자기인줄 알았습니다. 약국을 지나다니면서 저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고, 저는 결국 1984년도에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서 컴퓨터 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주산학원을 다녔는데 이때 사설 학원은 모두 주산학원이 붐이었고 컴퓨터란 용어가 있지도 않았을무렵 동네 약국 약사님의 영향을 받아서 컴퓨터란 세계를 알게 되었고 배울 수 있는 곳을 이래저래 수소문 결과 안양에 컴퓨터 학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을 엄청나게 설득해서 겨우 컴퓨터 학원을 다닐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오락실을 다녔는데 오락실 안가는 조건으로 컴퓨터 학원에 가겠다고 겨우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집에서 꽤 먼거리의 안양역 근처의 안양컴퓨터 학원 2기생으로 제가 처음 학원에서 제대로 접한 기종은 금성사 FC-30 이었습니다. 학원에 FC-80도 있었지만 새내기들에겐 입문으로 FC-30 을 쓰게 했습니다. FC-80은 MSX호환으로 당시 고급기종이라 학원생들 중에서도 고참들만 만질수 있는 기종이었습니다. 

FC-30 특징은 저해상도에 텍스트 위주로 (당시 그래픽은 안되었던것으로 기억) BASIC 코딩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학원에서는 중요시 가르치는것은 순서도 였습니다. 주로 순서도 교육으로 실습시간보단 공책에 순서도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순서도 잘 못하면 선생님에게 혼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베이직의 10, 20, 30 코딩 순번과 PRINT, PLAY 명령어는 수십년인 지난 세월에도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10 단위로 끊는건 중간에 오류가 생기거나 수정이 필요할때 5 단위로 넣거나 더 작은 단위로 넣거나 하는 이유 였습니다.

금성사 FC-30

이미지는 구할수 없어서 아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futurewalker.tistory.com/266

 

추억의 IT 히어로, 정내권. 그 기억의 편린을 들추며

당신에게 추억의 IT 히어로는 누구인가? 사실 MS Hero 블로그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최근까지 방문하지 않았었다. 나도 점점 블로그 중독이 되어가면서, 등록되어 있는 30여 개의 RSS Feed들도 매일

futurewalker.tistory.com

학원을 1년정도 다녔고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때 저도 고참이 되어서 FC-80으로 갈아 탈 수 있었습니다. FC-80 부턴는 BASIC으로 그래픽 프로그램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MSX 호환으로 게임팩이 된다는 특징으로 학원도 토요일날은 수업이 없어서 게임을 할수 있게 해줬는데 저는 토요일날 학교 끝나고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학원을 가면 학원문 닫을때까지 FC-80 으로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유행했던 MSX 게임팩은 쿵후 였습니다. 오디오 테입도 외장으로 연동이 되어서 당시 게임팩은 비싼 가격으로 카세트 테입으로 게임을 로딩하고 아는 선배님들에게 정중히 부탁해서 게임을 세이브 복사 해서 소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로딩하는데 30분 세이브하는데 30분 이상 걸리니 1시간 이상은 버리니 아까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카세트 더빙으로 이게 복사가 될지 무척 궁금했는데 소중한 게임이 담긴 테입을 빌려주시는 선배님들이 없어서 시도는 못해봤네요)

아직도 기억나는 카세트테입의 CLOAD , CSAVE는 프로그램 저장보단 선배님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게임을 복사해야 했던 기억이 날정도 많이썼던 소중한 명령어 입니다.

금성사 FC-80

1984~1986년도엔 안양엔 금성컴퓨터학원과 삼성컴퓨터학원이 있었는데 당시 안양 컴퓨터 학원생들 사이에 기싸움이 심했던 곳입니다. 기싸움도 심하고 대학생 선배님들 대모로 인해 안양은 어린시절 항상 최루탄 냄새 맡아가면서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나네요. 삼성 컴퓨터 학원에 친구가 다녀서 놀러가서 삼성 컴퓨터 학원의 SPC 기종도 보고 그랬는데 저에겐 금성사의 FC-30,80이 매우 정이 갑니다. 

2년정도 BASIC을 배우니 BASIC 코딩의 고수가 되고 더이상 BASIC 배울것도 없으니 원장님이 이제 상위기종으로 갈아타자고해서 학원에 2대 뿐이 없는 APPLE-II 를 접하게 됩니다.  전 군에서 감청부대의 특수정보부대를 나왔는데 이때 본부로 보고하는 양식의 문법 오류를 수작업으로 했었는데 어린시절 BASIC기억을 살려서 군에서 작전용으로 쓰던 16bit 컴퓨터의 MS-DOS의 GW-BASIC으로 자동으로 문법 오류 검사하는 프로그램을 코딩하였고 이것으로 포상 받아서 포상 휴가도 나오곤 했습니다.

아무튼 APPLE-II의 1D 포맷 플로피 디스크의 엄청나게 빠른 로딩속도에 감탄을 하였고 당시에 APPLE BASIC 도 있었는데 실제론 제가 APPLE-II로 넘어왔을땐 중학교 입학을 앞둔지라 부모님께서 이제 컴퓨터 같은 게임이나 하는 장난질은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해서 이제 컴퓨터 학원은 그만 다니게 되고 APPLE-II는 몇번 다뤄보지 못한채 중학생이 되어서 공부에 길로 접어 듭니다.

 

당시 APPLE-II 를 이용해서 저에겐 DBASE-II, 로터스 등을 배워보라고 원장님이 권유하였으나 그때 당시엔 개념이 없어서 그게 뭔지 몰랐지만 오느날의 DBMS, 엑셀이 된것 같네요 

그러나 저의 DNA는 공돌이 DNA가 심어져 있었고 중학생이 되어서 공부보단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 입상, 라디오 조립대회 입상, 과학상자 대회 입상등 전국 과학 및 만들기 대회의 온갖 입상을 해가면서 공부와 다른 상을 휩쓸고 다녔는데 공부상을 못타오는 부모님은 마음아파하며 쓸때 없는짓 하지 말라고 공부상좀 타오라고 야단치게 됩니다.

중1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전교 등수에 드는 조건으로 16bit 컴퓨터를 사달라고 부모님과 협상을 하게 됩니다.  중 2 1988년도 부터 다뤄본 16bit 를 다음 편엔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16bit 컴퓨터를 접하고 나선 저는 공부와 담쌓게 되고 이쪽 분야로 나가야겠다는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